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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서 쇠로, 인류 문명을 따라 굴러간 바퀴

by life-and-work 2024. 7. 25.

▲ 바퀴가 굴러온 시간만큼 인류의 역사도 발전을 거듭하였다. [사진 출처: Pixabay]

 

무거운 짐을 옮기는 효과적인 방법

인류 최고의 발명품을 꼽으라고 하면 어떤 것을 떠올릴까? 사람마다 이견이 있을 것이다. 또한 '최고'라는 수식어에도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불, 문자와 더불어 인류의 3대 발명품으로 바퀴를 꼽는다. 특히 바퀴는 자연계에 이미 존재하는 물건을 모방하지 않고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낸 발명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더욱이 바퀴의 등장을 계기로 훗날 여러 가지 탈것이 만들어지면서 인류는 더 멀리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고, 대규모 물자 수송이 가능했다. 그러면서 마을과 마을을 잇는 도로가 생겼고, 시장과 도시가 발달했다. 이 길과 도시를 따라 새로운 물건과 소식이 퍼져 나가면서 인류 문명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바퀴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전한다. 인류가 바퀴 모양 물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신석기 시대이지만, 이 시기의 바퀴는 지금처럼 탈것에 부착된 것이 아니라 옷감을 만드는 실을 뽑는 데 썼다. 청동기 시대에는 바퀴로 그릇이나 도자기를 만드는 데 사용했다. 도공(陶工)들이 토기를 빚기 위해 고안한 커다란 원반 형태였다. 증거들에 따르면, 바퀴가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4000년 전후로서,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바퀴를 이용한 운송 수단이 등장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바퀴는 사람들이 무거운 짐을 손쉽게 운반하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바퀴가 발명되기 전, 사람들은 무거운 짐을 옮기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건 밑에 나무토막을 까는 방법을 알아냈다. 이 방법은 특히 마찰력이 작은 눈이나 얼음 위에서 큰 효과를 발휘했다. 하지만 진흙길이나 비탈길에서는 큰 효과가 없었다.

다음으로 찾아낸 방법은 나란히 깔아 놓은 통나무 위로 무거운 물건을 올려 놓고 굴리는 '굴림대' 형태였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도 이 방법으로 커다란 돌을 날라 피라미드를 건설했다. 영국의 거대한 돌기둥 유적인 '스톤헨지'나 거대한 고인돌도 모두 이 방법으로 돌을 옮겨 만든 것이다.

차량과 결합되어 이루어진 수송의 혁명

바퀴가 탄생하기 전에는 통나무가 바퀴 역할을 했다. 그러다가 통나무를 가느다란 봉 모양으로 만들어 수레에 고정하고, 양쪽에 얇게 자른 통나무 원판을 끼우는 방법이 등장했다. 최초의 본격적인 바퀴가 탄생한 것이다. 바퀴 달린 수레의 등장은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바퀴가 운송 수단으로 전환된 것이다. 바퀴 달린 수레가 발명되면서 사람들은 짐을 한결 손쉽게 나를 수 있었고, 상품과 사람의 이동에 혁명을 가져왔다.

바퀴는 기원전 2000년, 더 새로운 모습으로 변했다. 바퀴통(바퀴축을 바퀴에 고정시키는 부분)과 테두리 바퀴를 연결하는 '바큇살'이 등장하면서 오늘날에도 흔히 볼 수 있는 바퀴의 형상을 갖추게 되었다. 기원전 2000년 이후의 유물이나 기록을 보면 바큇살이 있는 바퀴를 볼 수 있다. 무겁고 조종하기 힘들었던 초기의 속이 찬 통나무 바퀴가 바큇살이 있는 바퀴로 대체되면서 전체 무게를 줄였을 뿐만 아니라 내구성도 향상시켜 다양한 지형과 까다로운 환경에 더욱 적합해진 것이다. 바큇살을 가진 바퀴는 유럽, 중국 등 세계 여기저기에서 사용되었다.

바퀴 제작 기술은 날이 다르게 발전을 거듭했는데, 전쟁용 수레인 전차(戰車)를 만드는 데 사용하면서 바퀴 제작 기술을 더욱 발전시켰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전차에 바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집트 군대는 전차를 강력한 무기로 채택하여 고대 전쟁에서 바퀴 달린 차량의 전략적 중요성을 보여 주었다. 기원전 1300년 무렵 히타이트 제국과 이집트 간에 벌어진 '카데시 전투'에서는 양측에서 동원된 전차가 5000~6000대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비슷한 시기 중국 상나라의 수도 은(殷) 부근에서도 바큇살 달린 마차 유물이 발견되었다. 현재까지 발견된 기록으로만 추정해도 바큇살 달린 바퀴와 이를 이용한 마차는 5500년 동안 인류의 탈것을 지배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또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는 수레바퀴를 운송에 채택하여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무역을 촉진했다. 중국의 한 왕조 시대(서기 200년경)에는 수레가 노동과 운송을 위한 실용적인 도구로 등장했다. 바퀴의 효과적인 적응성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운송에서 바퀴의 중요성을 인식한 로마인들은 바퀴 달린 차량이 쉽게 이동하도록 하기 위해 광범위한 도로망을 건설했다. 이러한 인프라 마련은 효율적인 무역, 통신, 로마군의 신속한 동원을 위한 기반으로 작용하였다.

인류 역사와 함께 굴러가는 바퀴

산업혁명은 사회·경제의 변화와 더불어 바퀴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바퀴 재료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기차가 발명되면서 쇠로 만든 바퀴가 탄생한 것이다. 1848년, 스코틀랜드의 톰슨(Robert W. Thopmson)은 동남아시아에서 대량 수입하기 시작한 '고무'라는 신물질에 주목하였다. 고무의 힘과 탄성을 눈여겨보던 톰슨은 바퀴에 고무를 덧대면 마차가 덜 흔들거려 승차감도 개성하고 마찰력에 의한 추진력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생고무를 쇠로 된 바퀴에 접목했다. 하지만 바퀴에 고무만 덧댄 타이어는 여전히 딱딱했고 도로에서 장애물에 걸렸을 때 충격을 흡수하기 어려웠다.

지금처럼 공기를 불어 넣는 튜브형 공기 타이어는 1888년 스코틀랜드의 수의사 존 보이드 던롭(John Boyd Dunlop)이 특허 등록을 하고 나서 퍼졌다. 던롭은 어린 아들이 딱딱한 바퀴의 자전거를 타다가 튕겨져 나가며 부상을 입자 푹신한 바퀴를 떠올렸다. 그는 타이어 안쪽에 공기 튜브를 넣고 그 안에 공기를 채워 넣어 좀 더 빠르고 부드럽게 탈 수 있는 바퀴를 만들었다.

이 바퀴(공기 타이어, 고무 타이어)를 자동차용으로 개량한 것은 프랑스의 미슐랭 형제(André Michelin, Edouard Michelin)이다. 당시 타이어는 수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1891년 미슐랭 형제는 타이어만 교체할 수 있는 타이어를 개발하였다. 1895년 이 타이어를 장착한 푸조 '르클레어'가 자동차 경주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서 공기압 타이어를 상품화하는 데 성공한다. 금속 휠과 휠을 감싸는 고무 타이어의 형태는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처음 발명됐을 때의 모습에서 바퀴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재료가 달라지고, 세부적인 요소가 추가됐을 뿐이다. 더욱이 자동차, 기차, 손수레를 움직이게 하는 용도 외에도 기계 부품 속에서 톱니바퀴로 작용한다든가 작동 형태를 바꿔 도르래로 활용되는 등 인류의 산업 기술 면면에 흔적을 남겼다. 이처럼 바퀴는 인간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 되어, 바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인간의 역사가 이어지는 한 바퀴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끊임없이 굴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