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품으로 여겨진 단추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인간이 '옷'을 입기 시작한 때는 약 17만 년 전쯤으로 추정된다. 추정의 근거는 사람의 옷에 사는 '이'(Pediculus humanus humanus)가 이 무렵부터 발견되기 때문이다. ('Pediculus humanus humanus'는 Pediculus humanus capitis(사람의 머리카락에 사는 '이')와는 구별된다.) 이가 진화한 역사에 근거한 연구는 의류의 기원에 대한 유력한 단서를 제공한다. 미국 플로리다 대학교(University of Florida)의 생물학자 데이비드 리드(David Reed) 연구 팀에서는 DNA 염기 서열을 분석하여 Pediculus humanus humanus가 출현한 시기가 약 17만 년 전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지구의 기후가 추워지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해 인류가 옷을 입기 시작한 시기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하였다.
초기 인류는 꽤 오랜 기간 동안 거의 벌거벗은 채로 살아왔다. 인류가 오래 머물렀던 아프리카는 덥고 온난한 기후였기 때문에 의복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약 6~10만 년 전 고향인 아프리카를 떠나 현재의 유럽과 러시아를 포함한 고도의 추운 지역으로 이주해 가는 과정에서 옷의 필요성이 대두했을 것이다. 또한 추운 지역으로 북상할 수 있었던 것도 인류가 의복을 발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 인류가 입었던 옷의 실물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초기에는 석기를 이용해 벗겨낸 동물의 털을 입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초기의 옷은 걸치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단추가 발명되면서 패션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단추를 발명한 사람과 단추가 언제부터 생산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단추'라는 말은 꽃봉오리를 뜻하는 라틴어 'Bouton'에서 왔다. 구슬 모양의 금속 단추를 루프 형태의 고리에 끼우는 모습이 꽃봉오리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단추는 약 5000년 전 모헨조다로 유적(현 파키스탄 인근)에서 발견된 것이다. 굽은 조개껍데기로 만들어진 그 단추는 고리에 거는 형태로, 장식용이었다. 그러나 과거의 단추는 오늘날의 단추와는 위상이 달랐다. 일일이 손으로 깎아 만들어야 하는 수공예품이었고, 짐승의 뿔이나 청동, 보석 등 소재도 비쌌다. 더욱이 꼭 필요한 물건도 아니어서, 서민들은 구입할 여유도 없었지만 굳이 옷에 단추를 만들어 입을 이유도 없었다. 거기에 신분제 사회였던 중세 유럽에는 단추를 금이나 보석으로 만들어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을 더했고 평민이나 하층민은 사용할 수 없도록 법으로 금지하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일상 생활용품이 아니라 부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사치품이자 비싼 장신구였다. 고대 로마의 귀족들은 치렁치렁한 토가 주름을 고정하기 위해 (귀)금속 소재의 다소 무거운 단추를 추처럼, 혹은 비상금으로 매달고 다니곤 했으며, 단추 하나를 떼어 빚을 갚았다는 기록도 있는 것으로 보아 단추는 값진 패션 아이템이자 부와 신분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남성복과 달리 여성복 단추가 왼쪽에 달린 까닭도 귀족 여성들의 단추를 시녀들이 여며 주던 관습의 흔적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소매선을 따라 작고 매혹적인 단추들을 일렬로 장식하여 팔뚝 부분을 에로틱하게 보이도록 타이트하게 조였다.
이렇게 각종 귀금속과 크리스털, 구리, 유리, 천 등으로 만든 버튼은 인간의 시선을 성적 매력이 가득한 신체 부위로 보이게끔 강조하는 기능을 했다. 이후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접어들면 본격적인 멋과 장식, 궁정 내의 서열과 위상을 드러내는 기호로 단추를 이용하였다. 포켓 덮개와 커프스, 스커트 주름 상단에 수많은 단추를 달아 장식했다. 이를 통해 볼 때, 단추는 옷을 잠그는 기능적인 면보다는 부와 신분, 계층을 구분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단춧구멍으로 다양화된 실용성
재킷, 카디건, 코트 등의 옷에 달려 있는 단추는 기본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단춧구멍이나 단추 고리와 결합하는 역할을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어깨에 걸쳤던 튜닉(tunic)을 보면 단추를 고리에 끼우는 방식으로 고정시켰다고 한다. 단춧구멍이 발명되기 전에는 옷을 끈으로 졸라매거나 장식 핀, 뾰족한 도구 등으로 고정했다. 하지만 옷을 고정시키는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단춧구멍 만한 것이 없다. 단춧구멍을 누가 발명했는가에 대한 기록은 나타나 있지 않다.
단춧구멍은 13세기경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온 기사들이 중동에서 유럽으로 가져온 것으로 생각된다. 단춧구멍에 끼우는 형태의 단추는 13세기 독일에서 처음 만들어져 유럽으로 확산되었고, 중세 시대에는 여러 개의 단추 길드가 생겨났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단춧구멍이 출현하면서 단추 사용이 크게 늘었다. 이 즈음부터 옷에 단추를 달아 '여미는' 실용성이 강화되면서 당시 유럽인들은 열광하였다. 사람들은 옷을 입는 데 시간을 쏟을 만큼 많은 단춧구멍을 만들었고, 어떤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 옷을 입기 시작하면 점심 식사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의복에도 변화가 왔다. 통자루형(머리와 손이 들어갈 구멍만 남기고 다 꿰맨 형태)의 옷이 아닌, 사라센의 옷처럼 앞을 열고 단추로 여미어 입는 옷들이 등장하였다. 단추 덕분에 목둘레와 소매의 크기를 맞출 수 있게 되면서 여자들은 팔 모양을 그대로 보여주는 좁은 소매의 옷이나 몸 선을 강조하는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이후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단추가 대량으로 생산되었다. 이제는 저렴한 재료로도 단추를 만들 수 있게 되었고, 기계 보급으로 제조법도 쉬워짐으로써 단추 원래의 기능인 실용성이 강조되었다. 대중들에게도 단추가 급속히 전파되어, 귀금속이 아닌 나무나 곤충, 심지어 머리카락으로 만든 단추도 등장하였다. 또한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기발한 디자인의 단추가 쏟아져 나왔다. 풍자화가 들어간 단추가 등장하기도 하고 외설적인 그림이나 노예 해방 등 시대상을 반영한 단추도 만들어졌다. 이제 사람들의 삶과 생각, 사회상을 작은 단추에 담아 내는 '단추의 황금기'를 일구는 시대가 된 것이다. 자본주의가 무르익던 19세기 초부터는 장인의 손을 떠나 공장에서 단추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단추는 오랜 역사만큼 사람들 가까이에서 패션과 함께 발전해 왔고, 의복보다 튀지 않으면서도 없으면 안 되는 존재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단추보다 더 빨리 열고 닫는 도구의 탄생
수천 년이나 되는 단추의 역사와 비교할 때 지퍼의 역사는 이제 100년을 조금 넘었다. 지퍼의 기능은 옷이나 잡화를 편하게 여닫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지퍼가 개발되기 이전에는 이 역할을 단추나 끈으로 해결했다. 하지만 틈이 계속 생기고 안쪽이 보이는 문제가 늘 존재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더욱 많은 단추나 끈을 달았지만 여미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불편함이 따랐다.
재봉틀을 발명한 일라이어스 하우(Elias Howe)는 1851년 '자동으로 지속되는 의류의 닫힘(Automatic, Continuous Clothing Closure)'이라고 하는 형태의 제품을 구상하였다. 그러나 일라이어스 하우는 자신이 발명한 재봉틀 홍보에만 매진하는 바람에 지퍼의 최초 형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4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휘트컴 저드슨(Whitcomb L. Judson)은 군화 끈을 빠른 속도로 매는 방법을 연구하던 중에 '걸쇠 잠금장치(Clasp locker)'라는 제품을 특허받는다. 오늘날의 지퍼 형태와 유사한 물건이었다. 휘트컴은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발명 박람회에 이 제품을 제출하였다. 하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소형 쇠사슬에 구부러진 쇠돌기를 넣은 모양이 거추장스러웠고, 중간에 걸리고 풀어지는 고장이 너무 잦았기 때문이다. 또한 대량 생산을 할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았다. 결국 휘트컴은 자신이 개발한 제품을 대중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 지퍼의 원리를 발명한 사람은 휘트컴이었지만, 형태와 모양을 바로잡은 것은 유니버셜 패스너사(Universal Fastener Company)의 기디언 선드백(Gideon Sundback)이었다.
기디언은 1917년 '분리형 고정 장치(Separable Fastener)'라는 이름으로 특허를 받았다. 이 장치는 갈고리 대신 양쪽의 고정된 이빨을 교차시키는 방식이었고, 슬라이더(이빨을 맞물리게 하거나 푸는 장치로, 몸통과 손잡이로 되어 있다.)를 새로 포함한, 현대의 지퍼와 흡사한 제품이었다. 이 제품은 1차 세계 대전 때 미군의 낙하복과 구명 조끼로 납품되었고, 담배 주머니로 쓰이면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지퍼(Zipper)'라는 이름은 굿리치사(Goodrich Company)에서 지퍼를 열고 닫을 때 나는 '지-프-지-프(zip zip)' 소리에 착안해 지퍼가 달린 장화의 상표명으로 붙인 것인데 나중에 보통 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1923년 굿리치사에서는 지퍼가 달린 방수용 구두를 생산했다. 그런데 이것이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지퍼도 덩달아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뒤이어 1930년대부터는 본격적으로 의류에 지퍼가 부착되기 시작했다.
이후 지퍼가 상용화까지에는 30년 정도가 걸렸지만, 지퍼가 전 세계로 퍼지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일본의 YKK(Yoshida Kogyo Kobushikikaisha, 요시다 공업)에서는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기존의 미군 군복에 달린 지퍼를 연구하고, 새로운 플라스틱 지퍼를 개발하여 현재 전 세계 지퍼 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다. 명품 지퍼로 이탈리아 람포(Lampo)와 스위스 리리(RiRi)도 유명하지만 생산량은 YKK에 못 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