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찰나를 보존하는 기적-옵스큐라에서 디지털 카메라까지

by life-and-work 2024. 7. 15.

▲ 한 장의 사진은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과거의 시간을 재생시켜 보는 것이다.  [사진 출처: Pixabay]

 

가장 기초적인 원리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카메라'의 어원은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라틴어로 '어두운 방'의 의미로, 어두운 방이나 상자 안의 작은 구멍을 통해 빛이 통과하면 외부의 풍경이나 형상이 만들어진다는 것)'에서 왔다고 보는 것이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나뭇잎의 구멍으로 태양의 이미지를 투사하여 일식을 관찰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또한 카메라 옵스큐라 (Camera Obscura)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유클리드의 기하학을 이용하여 광학을 연구했던 아라비아 과학자들도 문헌에 이와 같은 '어두운 방'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 카메라 옵스큐라는 사진 기술이 발명되기 이전에 사용되던 '바늘구멍 상자'였다. 초등학교 시절에 만들어서 놀았던 '바늘구멍 사진기'의 원리도 이와 동일하다. 그 원리는 다음과 같다.

사각형의 상자에 바늘로 작은 구멍을 뚫고 그 구멍으로 빛이 들어오도록 한다. 그러면 밖에서 들어온 빛에 의해 물체의 상이 반대편 벽에 맺힌다. 이때 보이는 상은 위아래가 거꾸로 되어 있다. 사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카메라와 필름이 개발되기 이전, 화가들이 정밀한 풍경 묘사를 위해 사용(15세기경부터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다.)하던 보조 도구였다. 그들은 외부의 풍경을 눈으로 보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옵스큐라를 이용하여 맺힌 상을 그대로 베끼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들은 카메라 옵스큐라로 특정한 자연의 풍광을 담은 후, 이와 같은 상을 토대로 자연을 좀 더 정밀하게 모사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우리는 사진이나 영상을 친숙하게 접하고 있다. 하지만, 고대와 중세의 과학자들은 사진 기술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또한 당시에는 자연의 모습을 담아 둘 수 있는 별도의 장치가 없었다. 그런데 카메라 옵스큐라는 자연이 보여 주는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고 관찰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였던 것이다. 특히 자연 현상을 관찰하려는 과학 탐구자에게는 더욱 유용했다.

영상 보존을 달성하게 된 최초의 카메라

사진술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카메라 옵스큐라로 비추어진 상을 손으로 따라 그리는 것 말고는 투영된 영상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이 무렵, 사람들은 사물의 모습을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모습을 담고 있는 빛의 물리·화학적 특성을 이용하여 사물의 형태를 고정시키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817년 니세포르 니엡스(Nicéphore Niépce)는 최초의 사진을 촬영하였다. 작은 카메라에 염화은으로 도금한 종이를 넣고, 염화은이 빛을 받아 변하는 정도에 따라 이미지를 담아 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사진은 영구적이 아니었다. 촬영된 이미지를 보기 위해 빛에 노출하면 이미지가 모두 검어져 보존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1826년 니엡스는 백랍에 역청을 입혀 며칠 동안 길게 노출시키켜 보는 방법을 시도했다. 역청(bitumen, 아스팔트)은 빛에 노출되면 굳는 성질을 갖고 있었다. 그는 굳지 않은 부분을 용매로 제거해 밝은 부분은 역청으로, 어두운 부분은 백랍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노출 시간이 너무 길어 사진 한 장을 얻으려면 며칠씩 걸리는 한계를 드러냈다. 1827년 그는 프랑스 파리의 샤를 슈발리에 및 뱅상 슈발리에(Charles Chevalier and Vincent Chevalier)가 제작한 슬라이딩 방식의 나무 박스 카메라를 사용해 최초로 영구적인 영상을 제작하였다. 그 사진은 백랍판에 역청을 코팅한 후 빛에 노출시키는 방식이었다. 빛을 쏘인 역청은 굳어지는데, 굳지 않은 부분을 녹여내면 사진이 완성된다. 이 사진을 본 프랑스 화가 폴 들라로슈(Paul Delaroche)는 "오늘부로 그림은 죽었다."라고 말했다.

1839년은 카메라가 공식적으로 탄생한 해로 간주된다. 파노라마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던 루이 다게르(Louis Daguerre)는 빛이 그리는 사물의 상을 고정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했다. 1837년 다게르는 은판에 아이오딘 연기를 쐬어 빛에 민감한 아이오딘화 은 감광막을 얻고 이것을 카메라에 넣어 사진을 찍어 보았다. 찍힌 사진을 수은 연기로 현상하면 아말감의 상이 떠오르는데, 여기에 뜨거운 소금 용액으로 남은 아이오딘화 은을 제거해 이미지를 안정화시켰다. Daguerreotype은 잠상을 이용해 단 몇 분의 노출로도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은판을 이용한 최초의 사진이었으며, 잠상을 이용해 단 몇 분의 노출로도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Daguerreotype 카메라는 1839년 알퐁스 지루(Alphonse Giroux)가 생산한 최초의 대량 판매 카메라였다. 판에 사진 이미지를 영구적으로 캡처하는 새로운 프로세스였다.

계속 진화하는 카메라, 그리고 순간의 캡처

노출 시간이 짧아지자 손으로 일일이 셔터를 조작하던 단계를 벗어나 기계식 셔터가 필요하였다. 이때부터 단렌즈 반사식, 이렌즈 반사식에서 아주 큰 현장 카메라, 포켓용 카메라 등 다양한 카메라가 제작되었다. 또한 렌즈 앞에 장치하는 드롭 셔터(길로틴 셔터), 접는 방식의 핸드카메라, 고속 셔터 등도 나타났다.

사진 필름은 조지 이스트만(George Eastman)에 의해 시작되었다. 1884년 이스트만 건판 필름 회사에서는 종이 재질의 휘어질 수 있는 사진 필름을 발명했고, 1888년에는 이스트먼 코닥(Eastman Kodak)사에서 "You press the button, We do the rest.(셔터만 누르세요, 그 다음은 저희가 처리해 드립니다.)"라고 하는 광고 문구와 함께 당시 100컷짜리 롤 필름이 들어있는 카메라를 개발하였다. 롤 필름은 스풀에 감겨 있는 긴 필름으로, 카메라에 장치되어 있는 스풀이나 다른 축에 감으면서 촬영하기 때문에 연속 촬영을 하기에 편리하다. 이 Kodak 카메라는 daguerreotype 카메라처럼 선명한 네거티브 사진을 캡처할 수 있었다. 사용자가 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네거티브 사진이 포함된 필름은 어두운 상자에 보관하여 처리를 위해 Eastman Kodak사로 보내어 사진을 현상 및 인화해 주고, 새 필름을 넣어 돌려줬다. 이 때문에 일반인도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1880년대 후반에 이르면 휴대용 카메라의 크기도 많이 작아졌고, 이후 셔터와 조명 등 카메라에 관련된 각종 기구들이 점점 더 소형화되고 그 기능도 향상되었다. 1913년에는 35mm 영화용 카메라가 최초로 발명되었고 영화용 롤필름이 생산되었다.

1943년,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고 있던 에드윈 H. 랜드(Edwin H.Land)에게 세 살짜리 딸이 질문을 던졌다. 사진을 찍은 후 왜 바로 확인할 수 없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 질문이 발단이 되어 에드윈 랜드는 본격적으로 즉석 카메라 개발에 매진하였다. 그리고 불과 5년 후인 1948년에 그의 카메라가 매장에 출시되었을 때 역사상 처음으로 소비자가 스스로 필름을 찍고 즉시 현상할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더 다양한 카메라들이 고안되었다. 화학 공정을 이용해 촬영 1분 만에 사진을 인화해 내는 즉석 카메라, 필름을 사용하는 아날로그 카메라에 비해 사진을 메모리 카드나 내부 저장 장치에 보관하는 디지털 카메라에서 스마트폰 내장형 카메라까지, 카메라의 진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지나가는 순간과 찰나의 시간을 담는다. 그것은 역사의 한순간일 수도 있고, 한 사람의 생애 한 단면일 수도 있으며, 소중한 사람과 함께 나눈 모습을 추억하기도 한다. 어쩌면 놓쳐 버릴 수도 있는 순간을 기록하는 카메라. 180여 년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많은 사람과 장면을 오롯이 담아냈을 카메라의 시간… … 카메라에 찍힌 장면은 그야말로 찰나의 기적과도 같은 것이다.